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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2019) 리뷰 계급 냄새 공간으로 드라나는 현대 사회 이미지

영화 ‘기생충’을 극장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혼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웃기지만 씁쓸했고, 현실적인데도 어딘가 낯설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는 말없이 앉아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봤습니다. 웃긴 장면인데 웃을 수 없었고, 평범한 가족 이야기 같지만 너무 낯설었으며, 마지막에는 먹먹함만 남았습니다. 단순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무겁고 현실적이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세계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 같았고, 계급 간의 단절을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이라는 결과도 놀랍지 않았고, 한국어 영화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 울림을 준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터 이 영화가 제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왜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지를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반지하와 언덕 위 저택, 공간이 말해주는 삶의 차이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은 영화 초반부터 그들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창문은 지면보다 낮고, 그 창을 통해 보이는 건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뿐입니다. 햇빛은 거의 들지 않고, 습기 찬 공기 속에서 벌레를 잡으며 식사를 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반면 박 사장 가족이 사는 저택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큰 창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마당에서는 아이가 텐트를 치고 놀 수 있으며, 구조상 외부와 단절되어 독립된 하나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이 두 공간은 단지 집의 구조가 아니라, 삶의 질, 안전, 희망, 인간관계의 밀도를 모두 상징합니다.

기우가 과외 교사로 박 사장 댁에 들어가게 되면서 두 가족은 처음으로 교차하게 됩니다. 이어서 동생 기정, 아버지 기택, 어머니 충숙이 하나씩 그 집에 들어가며, 마치 퍼즐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하지만 이 ‘스며듦’이라는 것이 마냥 긍정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그건 결국 자리를 빼앗고, 누군가를 밀어내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해가는 ‘침투’였고, 이미 그 집에는 또 다른 존재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가족 드라마에서 벗어나, 사회 구조 자체를 보여주는 은유로 깊어져 갑니다.

 

냄새라는 감각으로 드러나는 계급의 벽

영화에서 가장 섬세하고 잔인했던 장치는 ‘냄새’였습니다. 기택 가족은 외적으로는 그럴듯하게 변신합니다. 말투를 바꾸고 옷차림을 다듬고, 역할에 충실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박 사장은 그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불쾌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단순한 체취가 아니라, 삶의 환경, 곧 반지하의 공기, 저렴한 세제, 한 공간에서 오래 생활한 냄새였습니다. 박 사장은 정중하게 말하지만, 그 정중함 속에 담긴 무의식적인 차별과 선긋기가 기택에게는 깊은 상처가 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의 냄새를 불쾌하게 여긴 적은 없을까’, 혹은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냄새로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입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차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더욱 무기력해지고, 가해자는 차별을 했다는 인식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기택이 느끼는 모멸감은 누적되어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고, 그 마지막 선택은 분노의 폭발이자 자신이 속한 위치에 대한 절망의 표출처럼 느껴졌습니다.

 

계단과 지하실, 위아래로 나뉜 세계

영화 속 공간의 배치는 계급 구조를 그대로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으로 갈 때는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하고, 비 오는 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반지하로, 더 아래로, 계속 내려갑니다. 특히 홍수 장면은 상징적으로 강렬했습니다. 박 사장 가족에게는 단지 불편한 비였지만, 기택 가족에게는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재난이었습니다. 그들은 젖은 옷을 입고 다시 일하러 가야 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는 “누군가에게는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일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박 사장 집 지하실에 숨어 살고 있던 전 가정부의 남편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는 존재 자체가 지워진 사람이었고, 사회의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지하에서 외치는 ‘존경합니다’라는 말은 박 사장을 신으로 떠받들며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고, 결국은 광기로 변해버립니다. 저는 그를 보면서, ‘극단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파국으로 향하는 모멸감과 분노

결국 영화는 아이의 생일 파티라는 평화로운 장면 속에서 비극을 터뜨립니다. 모두가 웃고 있고,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고, 음악이 흐르지만, 그 속에는 축적된 감정들이 곪아 있었습니다. 기택이 박 사장을 찌른 그 순간은 충동적이기보다는 예정된 듯한, 너무도 자연스러운 분노의 표출이었습니다. 그 장면 이후 저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모든 감정이 눌려 있다가 한순간에 터진 느낌이었고, 그 먹먹함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폭력은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모멸감은 사람을 그렇게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영화는 말 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기택은 사라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며, 기우는 다시 반지하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돈을 벌고 집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그 결심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암시합니다. 그 집을 사는 데 걸리는 시간, 불가능에 가까운 계층 상승의 현실은 마지막 장면에서 희망보다는 환상을 더 느끼게 했습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

<기생충>은 단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제게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 그리고 나도 모르게 품고 있을 수 있는 시선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박 사장일 수 있고, 누군가는 기택일 수 있으며, 누군가는 지하실에 사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저는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곱씹게 되었고, 현실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관계, 감정은 계층이라는 구조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너무나 섬세하게 보여준 작품이었기에, 저는 이 영화를 꼭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며 떠오른 질문과 답변

Q1. 영화 제목 ‘기생충’은 누구를 의미하나요?
A1. 처음에는 기택 가족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박 사장 가족 역시 누군가의 노동에 기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회 자체가 모두가 서로에게 기생하는 구조이기에, 기생충은 특정 인물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Q2. 냄새가 그렇게 중요한 장치로 쓰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게 구분되는 계급의 상징입니다. 말투나 복장은 흉내낼 수 있어도, 냄새는 생활 속에서 배어나오는 것이기에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냄새는 그 어떤 요소보다도 계층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Q3. 기택의 분노는 왜 폭력으로 표출되었을까요?
A3. 오랜 시간 쌓여온 모멸감과 차별,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감정이 억눌려 있었고, 그 감정은 박 사장의 무심한 코막음 행동 하나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에 대한 분노로 읽히는 장면입니다.

 

Q4. 지하실에 살던 남편은 왜 그렇게까지 되었을까요?
A4. 그는 사회에서 배제된 인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자 했습니다. 박 사장을 신처럼 여기고 살아온 삶은 결국 극단적인 광기로 이어졌고, 이는 현대 사회에서 고립된 개인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줍니다.

 

Q5. 기우의 마지막 다짐은 진짜 희망이었을까요?
A5. 영화는 기우의 결심을 따뜻하게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결심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는 계층 상승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하며, 그 결말은 희망이라기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